건축과 융합적 인간
융합(convergent)은 서로 다른 분야를 합쳐 새롭고 혁신적인 영역을 만드는 개념으로, 분업·전문화를 뜻하는 분화(divergent)와 대비된다. 도시학자 김정후 박사는 pxd talks 강연에서 이 두 개념이 시대에 따라 번갈아 온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건축과 도시계획의 훌륭한 사례들 속에 함께 녹아 있었다고 짚는다. 건축가들이 저마다 세운 원리와 철학이 제품·공간·도시 스케일을 넘나들며 일관되게 적용된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알도 로시는 원·삼각형·사각형이라는 원초적 도형과 그리스·로마 신전의 고전 비례를 극장·주전자·도시 건축에 동일하게 적용해, 스케일이 달라도 하나의 원리로 통합된 작업을 남겼다. 미스 반 데 로에는 "less is more"라는 철학 아래 벽·기둥·천장이라는 최소의 구조 요소로 풍요로운 공간을 만들었고, 이 원리는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십자형 크롬 지지대에서 미스체어의 단순한 구조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게리트 리트벨트는 몬드리안 회화의 점·선·면 구성 원리를 3차원으로 옮겨 슈레더 하우스와 적청의자를 디자인했고, 알바 알토는 핀란드 호수의 유기적 곡선과 자작나무라는 지역 소재를 건축과 가구에 함께 녹여 지역성과 현대성을 결합했다. 노먼 포스터는 런던 시청의 채광·자연환기 설계와 런던 올림픽 버스 디자인 초안에서, 전통적 형태(빨간 이층 버스)를 유지하면서도 태양열 집열판 같은 친환경 기술 어휘를 덧붙이는 방식으로 유지와 혁신을 함께 추구했다.
건축과 도시계획은 사람 중심의 재해석을 통해서도 융합적 사고를 보여준다. 런던 하이드 파크의 다이애나 추모 분수는 다이애나의 삶의 굴곡을 물의 흐름 패턴으로 치환한 사례이며, 런던의 버려진 맥주공장 트루먼 브루어리는 예술가들에게 저렴하게 공간을 임대하는 방식으로 재활용되어 영국 창조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유럽 최대 규모였던 독일의 뒤스부르크 제철소(Duisburg-Nord)는 용광로를 암벽등반 코스로, 수송관을 미끄럼틀로 바꾸는 방식으로 폐산업시설을 24시간 가동하는 친환경 공원으로 전환했다. 이 사례들을 관통하는 것은 convergent와 divergent를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고,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념·철학·사용 상황을 중심에 두는 접근이다.
강연은 이런 융합적 접근을 15세기 르네상스형 인간 개념과 연결한다. 화가·조각가·건축가·기술자·해부학자·천문학자를 겸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단순히 여러 분야를 섭렵한 사람이 아니라, 그 분야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휴머니티(humanity)를 원천으로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낸 사람이었다. 전문화와 융합은 시대순으로 분리된 단계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공존해온 개념이며, 현재의 기술력과 상상력을 인간 중심의 본질적 디자인 원리로 엮어낼 수 있다면 르네상스형 인간을 능가하는 창의적 인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강연의 결론이다.
핵심 내용
- 융합(convergent)과 분화(divergent)는 시대순 단계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공존해온 개념
- 알도 로시: 고전 비례·원초적 도형을 극장·제품·건축에 동일하게 적용
- 미스 반 데 로에: less is more, 최소 구조 요소로 건축과 가구를 관통
- 게리트 리트벨트: 몬드리안 회화의 점·선·면 원리를 3차원 건축·가구로 확장
- 알바 알토: 핀란드 호수·자작나무라는 지역성을 현대적 기능과 결합
- 노먼 포스터: 전통적 형태를 유지하며 친환경 기술 어휘를 덧붙이는 접근
- 도시재생 사례: 다이애나 추모 분수, 트루먼 브루어리, 뒤스부르크 제철소 — 버려진 공간을 사람 중심으로 재해석
- 르네상스형 인간의 핵심은 다분야 섭렵이 아니라 그것을 묶어주는 휴머니티
관련 개념
- 이탈리아 디자인과 인본주의 — 기술보다 인간을 우선하는 디자인 철학의 다른 사례
- 디자인 사고 — 확산과 수렴을 오가는 디자인 씽킹의 사고 프로세스
- 조형의 요소와 원리 — 건축가들이 활용한 형태·비례의 조형 원리
- 디자인과 삶의 철학 — 같은 pxd talks 시리즈에서 다룬 디자인 철학 강연
- 사용자 중심 디자인 — 사람 중심 재해석이라는 공통된 관점
출처
- [pxd talks 54] 도시와 건축의 상상력 - 김정후 박사 — 2014-10-30,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