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李箱)과 융합예술

서울대 김민수 교수의 강의 시리즈 '디자인 역사 산책' 3주차는 문학가로만 알려진 이상(李箱, 1910~1937)을 건축가·삽화가·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를 겸한 한국 최초의 융합예술가로 재조명한다. 문학계는 그를 흔히 '난해한 작가'로 신화화하거나 성도착·정신착란 같은 개인적 일탈로 폄하해왔는데, 이는 그의 작품을 그가 살아온 공간적 환경·생애와 분리한 채 문학이라는 틀 안에서만 해석해온 문학적 순수주의·고립주의의 결과라는 것이 강연의 문제의식이다. 이상의 작품은 문학과 시각 예술 사이의 매체적 접점에서 발생한 상호작용의 산물로, 실제 그가 진행한 사고 과정의 작업 논리에 초점을 맞춰 심층적으로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이 경성고등공업학교 재학 중이던 1928년에 그린 자화상은 얼굴 요소가 의도적으로 비정형화된 초기 표현주의 작품으로, 조선에 서양화 기법이 유입된 이후 가장 강렬한 표현주의 이미지로 평가된다. 이 표현주의적 성향은 이상의 첫 장편소설 「12월 12일」에서 입체파적 변형을 통해 시각 이미지가 문자로 전환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이상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그가 나고 자란 공간의 역사적·지리적 배경을 함께 봐야 한다. 그가 자란 서촌 일대는 토목·영선을 담당하던 관청 '분선공감'과 대대로 전문기술직 중인계급이 모여 살던 지역으로, 그가 건축가의 길을 걷게 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오감도 시 제1호」의 '무서운 골목'은 흔히 정신분석적 '공포의 기록'으로 해석되어 왔지만, 실제로는 서촌 골목 끝에 있던 친일파 윤덕영·이완용의 저택을 마주했던 유년기의 실제 공포 체험을 기록한 장소 이미지다. 또한 「且8氏의 出發」은 조선물산공진회(1915)와 조선총독부 신청사(1916~1926) 건립 공사 현장의 굴착·항타 소리를 들으며 자란 유년 경험에서 비롯된 이미지로, 성적 은유가 아니라 좌절하지 않고 계속 땅을 파는 '또-팔-사람'이라는 뜻이며 식민지의 '모조 근대'에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담은 시로 재해석된다.

이상이 건축 잡지 「조선과 건축」에 발표한 '또 팔씨의 출발' 등의 작품은 설리번-라이트-르 코르뷔지에로 이어지는 근대 건축 기능주의의 영향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며, 「이상한 가역반응」·「선에관한 각서」처럼 기하학 용어와 기호로 채워진 작품들도 도식화해 시각 이미지로 읽어낼 때 억압된 시대 아래 암호화된 숨은 의미가 드러난다. 이상은 자신의 시를 문학의 단위인 '편'이 아니라 미술의 단위인 '점'으로 불렀는데, 이는 그가 시를 시공간을 압축한 그림으로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생전 직접 운영한 카페 제비다방의 기하학적 인테리어와 모서리 의자 역시, 식민지 '모조 근대건축'에 대한 환멸과 진정한 근대건축에 대한 열망을 공간적 실천으로 구현한 사례다.

핵심 내용

  • 이상(李箱, 1910~1937): 시·소설·수필뿐 아니라 건축·삽화·타이포그래피를 겸한 한국 최초의 융합예술가로 재해석
  • 1928년 자화상: 비정형적 얼굴 표현 — 조선 최초의 강렬한 표현주의 이미지, 첫 장편소설 「12월 12일」로 이어짐
  • 「오감도 시 제1호」 '무서운 골목' = 서촌 유년기 친일파 저택에 대한 실제 공포 체험의 장소 기록
  • 「且8氏의 出發」 = 조선물산공진회·총독부 신청사 공사 현장 체험 + 식민지 '모조 근대'에 저항하는 의지; 성적 은유 해석에 대한 재반박
  • 설리번-라이트-르 코르뷔지에로 이어지는 근대 건축 기능주의의 영향
  • 이상은 시를 '편'이 아닌 '점'(미술 단위)으로 지칭 — 시공간을 압축한 그림으로서의 시
  • 제비다방: 기하학적 미니멀리즘 인테리어로 구현한 '진정한 근대건축'에 대한 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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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2026-07-18 | 출처 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