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경험 디자인
죽음의 경험 디자인은 장례·임종 과정에서 사람들이 겪는 경험을 디자인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pxd 박재현은 친할머니의 장례를 겪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이 죽음을 경험하는 두 가지 경로—타인의 죽음과 나의 죽음—를 구분한다. 나의 죽음은 생애 단 한 번 경험하는 것이라 디자인의 대상이 되기 어렵지만, 타인의 죽음(장례·임종)은 여러 차례 마주하며 반복적으로 경험을 개선할 여지가 있는 영역이다.
이 관점의 철학적 뿌리는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의 죽음에 대한 두 가지 태도 구분에 있다. 하나는 죽음을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실존적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의 죽음을 보면서도 자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여기는 회피적 태도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곧 나을 것"이라는 안정감을 배려하듯 건네는 말이 실제로는 죽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위로하는 사람 자신의 불안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박재현은 할머니의 임종 과정에서 가족 모두가 병·약·식사라는 표면적 주제에만 머물며 할머니 본인의 삶과 바람을 나누지 못했던 경험을 이 '착한 거짓말'의 실례로 든다.
케이틀린 도티의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은 미국 장례 문화의 방부처리 관행을 "죽음을 부정하는 문화"의 단면으로 지적하며, 의료 시스템이 죽음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리고 소비 시장이 젊음을 찬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비판한다. 이는 죽음 경험 디자인에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사람이 본성적으로 죽음을 부정하고 싶어 한다면, 그 회피 성향을 강화하는 것이 좋은 디자인인가, 아니면 죽음을 직면하고 '잘 죽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좋은 디자인인가. 임종 연구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인생수업』에서 일상의 선택에서부터 진정한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죽음 앞에서 삶의 의미가 더 선명해진다는 역설과 맞닿아 있다. 결국 죽음을 다루는 서비스 디자인의 궁극적 목표는, 유한한 시간을 편리하고 의미 있게 채워주는 제품·서비스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에게 진실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죽음을 대화 주제로 꺼리는 현상은 국가를 막론한 보편적 현상이다. 영국·일본의 설문에서 응답자 대부분이 자신이 원하는 임종 방식에 대한 뚜렷한 소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가족과는 거의 이야기 나누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한국의 유언장 작성 비율(3~5%)은 영국(30% 이상)에 비해 현저히 낮다. 이러한 대화의 부재는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완화 치료나 장례식을 받게 되거나, 가족이 당사자 대신 중요한 결정을 내리며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한 해외 실험 사례들이 있다. Death Cafe는 처음 만난 사람들이 차와 케이크를 나누며 죽음에 관해 대화하는 비영리 이벤트로, 2004년 스위스에서 시작해 2011년까지 52개국 5,787회 열렸다—터부를 넘어 가족에게 자기 죽음의 소망을 이야기할 용기를 얻거나, 상실의 경험을 공유해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것이 목적이다. Poetic Ending은 패션 디자이너 출신 CEO가 설립한 맞춤형 장례 컨설팅 서비스로, ① 질문지와 대화를 통한 고객 상황 이해, ② 관·차량·장소 등 예산과 취향에 맞는 투명한 선택지 제공, ③ 고인의 삶을 담은 시·노래 창작이라는 3단계로 종교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개인화된 장례를 설계한다. 전자 음악가 요코가 시작한 내가 마지막으로 듣는 소리(Sensound) 프로젝트는 병원의 삐- 알림음이 환자 회복을 방해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사람이 임종 직전 가장 늦게까지 유지하는 감각이 청각이라는 점에 착안했다—OPEN IDEO와 함께 환자 40명을 인터뷰해 그들이 죽기 전 듣고 싶어 하는 소리(파도 소리,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 등)를 모아 공연으로 재구성했다. 이 사례들은 임종 경험 디자인이 의학적 관점을 넘어 시각·청각·공간·감정·기억까지 총체적으로 고려하는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핵심 내용
- 죽음 경험의 두 경로: 타인의 죽음(장례·임종, 반복 경험 가능) vs 나의 죽음(1회성, 디자인 대상화 어려움)
- 하이데거의 두 태도: 실존적 죽음(삶의 일부로 수용) vs 회피적 태도(남의 일로 치부)
- '착한 거짓말': 죽어가는 사람을 위한 위로가 실은 위로하는 사람 자신의 불안 관리 기제일 수 있음
- 케이틀린 도티: 방부처리·의료화·소비주의는 '죽음을 부정하는 문화'의 증상
- 핵심 질문: 죽음 회피 본성을 강화할 것인가, 직면을 돕는 디자인을 할 것인가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일상의 선택에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해야 죽음 앞에서도 후회가 적다
- 디자인의 역할: 유한한 시간을 의미 있게 채우거나, 부수적 일에 드는 시간을 절약해주는 것
- 죽음을 대화하기 어려운 현상은 국가 공통: 영국·일본 조사 모두 임종 소망은 있지만 가족과 공유하지 않음
- Death Cafe: 낯선 사람들과 차·케이크를 나누며 죽음을 대화하는 비영리 이벤트, 52개국 확산
- Poetic Ending: 상황 이해 → 맞춤형 선택지 제공 → 시·노래 창작의 3단계로 종교색을 뺀 개인화 장례 설계
- Sensound(내가 마지막으로 듣는 소리): 임종 직전 마지막까지 남는 청각에 주목해 병원 소리·희망 소리를 리서치
관련 개념
- 의료 서비스 디자인 — 병원 등 의료 체계가 죽음을 다루는 방식과 서비스 디자인의 접점
- 디자인과 삶의 철학 — 디자인에 철학과 삶의 의미가 담겨야 한다는 관점의 다른 사례
- 사용자 여정 분석 — 임종·장례라는 극단적 감정의 여정을 구조화하는 접근
출처
- 죽음의 경험 디자인 - 타인과 나 — 2020-07-31, 박재현 (Jaehyun Park)
- 죽음의 경험 디자인 — 2018-03-05, 박재현 (Jaehyun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