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패러다임의 시대적 진화

카이스트 HCI Design Lab 이건표 교수가 2013년 pxd talks 35 강연에서 제시한 관점으로, "디자인"이라는 행위 자체가 시대마다 다른 규칙 위에서 작동해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스마트 알약병 GlowCap처럼 오늘날의 디자인은 하나의 물리적 형태를 스케치하는 일로 끝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기술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서비스, 그 서비스가 미치는 사용자·이해관계자의 행동과 경험 전체를 아우른다. 디자이너의 역할을 Physical·Interactive Design으로 한정하기에는 이미 그 범위가 좁다는 것이다. 도널드 노먼을 인용해 연구(Research)와 실무(Practice)가 서로를 상아탑과 진흙탕으로 폄하해온 오랜 긴장 관계도 짚었는데, 애플·구글·페이스북·아마존 같은 플랫폼 기업이 다른 업종의 경쟁 규칙 자체를 바꿔버리면서 이 갈등 구도 역시 무의미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이건표 교수는 생산자·디자이너·제품의 관계가 시대마다 달라져 온 네 단계 틀을 제시했다. 전산업 시대(Vernacular Design)에는 생산자가 곧 물건을 직접 만드는 장인(Craftsman)이었고 결과물은 몸에 걸치는 수준의 Bodyware였다. 산업화 시대(Design by Drawing)에는 기계가 실제 생산을 맡으면서 디자이너는 형태를 그려내는 스타일리스트(Stylist)로 축소됐다. 정보화 시대(User-Interface Design)에는 그려내는 일마저 컴퓨터가 대신하게 되면서, 디자이너는 정보를 구조화하는 관찰자(Observer)로서 Useware를 만드는 역할로 옮겨갔다. 그리고 지금의 드림 소사이어티(UX & Service Design)에서 디자이너는 Useware를 넘어 Cultureware를 만드는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로서, 사용자와 함께 결과물을 완성해가는 위치에 서 있다.

이 흐름은 디자인 프로세스 자체의 주도권 이동으로도 이어진다. 기존의 Process 2.0은 디자이너가 사용자 그룹을 관찰·참여·테스트·인터뷰하되 현상 분석과 아이디어 발전, 결과물 산출까지 여전히 디자이너 주도로 이루어지는 구조였다. 반면 Process 3.0에서는 이 과정 자체를 사용자가 수행한다 — SNS 기반 정보 민주화가 확산되면서 롱테일 법칙이 작동하는 영역이 늘고, 사용자의 명확한 요구가 곧바로, 혹은 사용자 스스로의 손에서 결과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건표 교수는 미래 디자이너의 역할을 임파워러(Empowerer)로 규정한다 — 디자이너가 직접 만들어내는 대신,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생태계(Eco-system)를 구축하고 개방된 결과물인 openware를 준비하는 역할이라는 것이다. 디자인 능력이 민주화되는 흐름을 위협으로 여기기보다, 그 흐름 위에서 사용자를 지원하는 쪽으로 디자이너 스스로의 위치를 재정의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핵심 내용

  • GlowCap 사례로 본 디자인 범위의 확장: 물리적 형태를 넘어 기술·서비스·이해관계자 경험 전체를 아우르는 작업으로 진화
  • Research(이론)와 Practice(실무)의 오랜 긴장, 플랫폼 기업이 경쟁 규칙 자체를 바꾸며 이 구도가 무의미해지는 흐름
  • 생산자·디자이너·제품 관계의 4단계: 전산업 시대(Vernacular Design·Craftsman·Bodyware) → 산업화 시대(Design by Drawing·Stylist) → 정보화 시대(User-Interface Design·Observer·Useware) → 드림 소사이어티(UX & Service Design·Facilitator·Cultureware)
  • Process 2.0(디자이너 주도 관찰·분석·산출) → Process 3.0(사용자가 직접 관찰·분석·산출을 수행, 롱테일·SNS 기반 정보 민주화)
  • 미래 디자이너의 역할은 Empowerer —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도록 생태계를 구축하고 openware를 준비하는 역할

관련 개념

  • UX World 2013 컨퍼런스 — 같은 해 이건표 교수가 발표한 '사용자를 위한 디자인'에서 '사용자가 참여하는 디자인'으로의 패러다임 전환 논의와 짝을 이루는 강연
  • 대한민국 HCI UX 역사 — 이건표 교수가 1991년 KAIST에 창설한 디자인계획연구실(Design Planning Lab)의 국내 UX 역사적 맥락
  • 사용자 중심 디자인 — Observer 단계의 UCD/HCD 논의와 연결되는 지점
  • 디자인 주도 혁신 — 로베르토 베르간티의 의미(meaning) 재정의 혁신론과 대비되는 또 다른 디자인 패러다임 전환 이론
  • Lean UX와 Agile UX — 사용자가 결과물 형성에 직접 참여하는 협업 중심 UX 방법론과 맞닿는 Process 3.0의 실무적 구현

출처

최종 업데이트: 2026-08-21 | 출처 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