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개념의 역사적 변천
디자인 이론가 에치오 만치니는 "디자인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디자인 역사를 공부해라"고 말했다. 디자인 학자에게 디자인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저마다 다른 답을 내놓는데, 이는 200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디자인이라는 말의 의미 자체가 계속 변해왔기 때문이다. 카타리나 베렌츠(Catharina Brents)의 저서 『디자인 소사(Kleine Geschichte des Design)』는 만국박람회 시대부터 에코디자인까지 디자인 160년사를 통해 이 변천 과정을 짚는다.
디자인이라는 용어는 스케치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디세뇨(Disegno)'에서 유래했다. 16세기 조르조 바사리는 디세뇨를 "인간의 관념 속 인상을 정신적으로 표현하고 생생한 형상으로 그려내는 것"으로 정의했고, 페데리코 주카리는 이를 내면의 스케치(Disegno Interno)와 실현된 스케치(Disegno Esterno)로 다시 나눴다. 19세기까지 디자인은 스케치·도안을 의미하는 좁은 개념이었으나, 런던을 중심으로 공업화된 생산과 결합하며 의미가 확장되기 시작했다. 최초의 산업 디자이너로 평가받는 크리스토퍼 드레서는 1873년 저서에서 디자인을 "공업 생산에 응용되는 예술"로 규정했고, 고트프리트 젬퍼는 모든 제품이 우선 사용 목적을 통해 파악된다고 보았다. 영국·스코틀랜드의 미술공예운동(1870년대)과 독일공작연맹(1907년) 설립은 대량 생산 시대에 디자인이 필수 개념으로 자리 잡는 배경이 됐다.
20세기 들어 디자인 개념은 '확장'의 단계로 나아간다. 시카고 건축학파의 루이스 설리번은 1896년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고 주장했고, 바우하우스 설립자 발터 그로피우스는 "장식 없는 형태"를 내세웠다. 반대로 드레서가 주장한 '장식도 디자인'이라는 관점은 아르데코 운동으로 실현됐다. 1938년 미국 디자이너협회가 결성되며 '디자이너'라는 직업명이 공식화됐고, 미국 디자이너 레이먼드 로위는 산업 디자이너를 '생산·시장·판매 전략가'로 규정하며 성공적인 디자인의 기준으로 MAYA(Most Advanced, Yet Acceptable — 가장 앞서 있으면서도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원칙을 제시했다. 헨리 드레이퍼스는 디자인의 전통적 역할인 '외양'에 품질·비용·유지·유용성·안전 5가지 지표를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70년대에는 생태학적 디자인 운동이 더해진다. 빅터 파파넥은 저서 『인간을 위한 디자인』에서 "디자이너는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높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디자인의 윤리적 책임을 화두로 던졌다. 최근의 디자인 개념은 사용자 중심 디자인·지속가능한 디자인처럼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계속 확장되고 있으며, 스코트 클링커는 이런 새로운 유형의 디자이너를 '문화 창조자(Culture Maker)'라 불렀다. 결국 디자인의 시조를 크리스토퍼 드레서(영국)·고트프리트 젬퍼(독일)·윌리엄 모리스(영국) 중 누구로 볼 것인가는 여전히 열린 질문으로 남는다. 이 책이 보여주는 공통된 흐름은, 디자인이 한 시대의 고정된 정의로 머물지 않고 산업·사회·윤리적 요구에 따라 계속 재정의되어 온 개념이라는 점이다.
핵심 내용
- 디자인의 어원은 스케치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디세뇨(Disegno)'
- 크리스토퍼 드레서: 최초의 산업 디자이너로 평가, 디자인을 "공업 생산에 응용되는 예술"로 정의
- 루이스 설리번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vs 발터 그로피우스의 "장식 없는 형태" — 그리고 이에 반하는 아르데코의 '장식도 디자인'
- 레이먼드 로위의 MAYA 원칙: 가장 앞서 있으면서도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성공적인 디자인
- 헨리 드레이퍼스: 외양뿐 아니라 품질·비용·유지·유용성·안전까지 디자인의 지표로 확장
- 빅터 파파넥: 1970년대 생태학적 디자인 운동, 디자이너의 사회적·도덕적 책임 강조
- 스코트 클링커의 표현: 오늘날의 디자이너는 '문화 창조자(Culture Maker)'
- 디자인의 시조를 둘러싼 논쟁: 크리스토퍼 드레서·고트프리트 젬퍼·윌리엄 모리스
관련 개념
- 헨리 드레이퍼스와 토탈 디자인 — 이 책에서 다룬 헨리 드레이퍼스의 5대 지표를 실제 제품·서비스 사례로 확장한 개념
- 독일 바우하우스와 근대성 — 발터 그로피우스와 바우하우스가 디자인 개념 확장에 미친 영향을 다룬 별도 강의
- 디자인의 정의와 본질 — "디자인은 무엇인가"라는 같은 질문에 대한 스티브 잡스의 답변("Design is how it works")과의 대비
- 적정기술과 사회적 디자인 — 빅터 파파넥이 제시한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임이 이어지는 적정기술 흐름
출처
- [독후감] 디자인 소사小史 — 2015-01-08, 이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