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기반 재난 안전 교육 디자인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무기력감에 시달리던 pxd 구성원들은 'UX 디자이너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자리를 가졌고, 그 결과로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지루하지 않게 재난 대피 요령을 익히게 해줄 교육용 보드게임 프로젝트 '어루만지다'를 시작했다. 세월호 사건은 프로젝트의 발단이었지만 진행 과정에서 직접적 연관은 배제했고, 사고 관련자가 불편하게 받아들일 경우 언제든 폐기할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했다. 초기 프로토타입은 선박 보드 위에서 방→갑판으로 탈출하며 상황 카드에 대처하는 형태였으나, 리서치 결과 실제 재난 상황에서는 '정답'이 생각처럼 명확하지 않고 개인의 대처보다 승무원 지시를 따르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때문에 '재미있게' 배우는 것과 '정확하게' 배우는 것 사이에서, 그리고 경쟁 요소가 재난이라는 소재의 의도를 왜곡하지 않을지 사이에서 방향을 좁히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전문 재난 상식은 텍스트가 더 효과적이고 관련 도서·웹사이트도 이미 충분하다는 판단, 카드형 모바일게임으로 축소해봐도 일반인이 알아야 할 정보량 자체가 많지 않아 게임화하기 어렵다는 한계에 부딪혀 미궁에 빠졌을 때, pxd는 게임 전문 기업 놀공발전소를 찾아갔다. 놀공은 pxd의 아이디어를 듣고 근본적인 프레임 전환을 제시했다: 퀴즈 형태는 정보 전달일 뿐 게임이 아니며, 게임이 되려면 몰입이 필요하다. 몰입을 위한 조건으로 ① 모든 정보가 게임의 최종 목표에 영향을 끼치는 용도를 가져야 하고, ② 현실의 소재(선박 침몰 등)를 그대로 재현할 수 없으므로 추상화해야 하며, ③ 정보 중심이 아니라 메시지 중심으로 바꿔 메시지를 개인의 경험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방향에 따라 정보는 최대한 배제하고 플레이어의 선택과 감정 상태에 집중하는 쪽으로 설계 원칙이 재정립됐다. 놀공은 상황을 만들어 몰입하게 한 뒤 플레이어가 직접 선택을 내리게 함으로써 상황에 대한 이해를 이끄는 것을 목적으로 제시했고, 이는 게임이 실제 안전교육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게임으로 먼저 몰입해본 뒤 기존 교육을 받으면 이해도·집중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전제로 이어졌다.
목표를 재정립하기 위해 pxd는 학생 2명과 초등학생 소방교육을 담당하는 119대원 1명을 대상으로 파일럿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결과 학교의 의무 안전교육은 대부분 형식적인 매뉴얼식 대피 훈련에 그쳐 학생들이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반면, 구체적 상황 설정과 몸으로 배우는 방식을 취하는 초등 소방교육은 높은 효과를 보였다. 해외 사례 조사에서는 청소년이 1박2일 동안 실제 재난 상황과 동일하게 숙식하며 스스로 먹을거리와 생활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일본의 재난체험캠프가 인상적인 사례로 꼽혔는데, 여기서는 참여자가 스스로 갖는 책임감과 역할이 핵심 변수였다. 이를 통해 효과적인 안전교육의 핵심은 상황에 대한 몰입과 대상자의 주체적 경험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최종적으로 프로젝트는 대상을 초·중학생으로, 목표를 이들의 안전 의식 함양과 인식 개선으로 확정했다.
이 원칙에 따라 도달한 최종 컨셉이 '안전한 우리 도시'다. 플레이어는 도시 설계자가 되어 화재·지진 등 재난에 대비한 안전 기물을 구매해 보드 위 도시에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재난은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알 수 없어 대비가 부족한 지점에서 발생하면 큰 피해를 입는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배치 결정에 책임을 지며 피해 최소화 방법을 계속 궁리하게 된다. 앞서 검토했던 물리적 체험형 대피 게임과 달리 이 설계형 게임은 게임 자체의 몰입 장치만으로도 플레이어가 상황을 통제하며 자신이 설계한 도시에 대한 주체적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프로젝트의 최종 프레임으로 채택됐다. 다만 프로젝트는 놀공발전소의 다른 프로젝트 일정과 겹치면서 본격적인 게임 설계로 이어지기 전에 중단됐고, pxd는 이후 놀공과의 협업을 다른 방식(2015년 팅커링·코어 메카닉 워크숍, 빅게임 '사도세자의 비밀' 등)으로 이어갔다. 글쓴이는 이 프로젝트를 영화 '인셉션'에 비유하며, 게임이 현실이 아니듯 꿈도 현실이 아니지만 그 안에서 겪은 경험이 깨어난 뒤에도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이 강력한 개입이 될 수 있다는 관점으로 글을 맺었다.
핵심 내용
- '어루만지다' 프로젝트: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pxd가 시작한 초·중학생 대상 재난 안전 교육 보드게임 기획
- 초기 프로토타입(선박 탈출 시뮬레이션)은 실제 재난 상황에 명확한 '정답'이 없다는 리서치 결과로 목표 재설정 필요성에 직면
- 놀공발전소와의 협업에서 핵심 프레임 전환: 퀴즈형 정보 전달은 게임이 아니며 몰입이 게임의 필요조건
- 몰입의 3원칙: 모든 정보가 최종 목표와 연결된 용도를 가질 것 / 현실 소재의 추상화 / 정보 중심에서 메시지 중심으로 전환
- 학생·소방교육 담당자 인터뷰와 일본 재난체험캠프 사례를 통해 몰입과 주체적 경험을 효과적 안전교육의 핵심 조건으로 도출
- 최종 컨셉 '안전한 우리 도시': 플레이어가 도시 설계자로서 안전 기물을 배치하고 무작위로 발생하는 재난에 책임을 지는 설계형 게임
- 놀공의 다른 프로젝트 일정과 겹쳐 본격 설계 전에 중단됐으나, pxd-놀공 협업은 이후 워크숍·빅게임 프로젝트로 이어짐
- 게임 경험이 종료 후에도 현실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영화 '인셉션'과 같은 강력한 개입이라는 비유로 프로젝트를 정리
관련 개념
- 게임 디자인 워크숍 기법 — 같은 pxd-놀공발전소 협업이 이후 팅커링·코어 메카닉 방법론 워크숍('숫자게임', '모맥')으로 이어진 사례
- 빅게임 디자인 — 놀공의 파우스트 게임을 계기로 pxd가 자체 기획한 또 다른 게임 기반 학습·역사교육 사례
- 게이미피케이션 — 게임 기법을 비게임 맥락(재난 안전 교육)에 적용한다는 점에서 MDA 프레임워크·재미이론과 이론적 배경을 공유
출처
- 현실의 문제를 게임으로 풀어내다 - 놀공과 함께한 프로젝트 '어루만지다' — 2014-12-18,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