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과 UX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은 심리학과 경제학의 교차점에서 탄생한 학문으로, 전통 경제학의 '완전히 합리적인 인간(호모 이코노미쿠스)' 가정을 부정하고 실제 인간의 의사결정을 연구한다. 허버트 사이먼의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 개념과 다니엘 카너먼, 아모스 트버스키의 전망 이론(Prospect Theory) 연구가 이 분야의 토대이며, 두 사람 모두 심리학자임에도 경제학 노벨상을 수상했다.
UX 관점에서 행동경제학이 중요한 이유는 사용자가 인터페이스를 이론적으로 최적인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이콥 닐슨의 "당신의 추측은 충분하지 않다(Your best guess is not good enough)"는 표현처럼, 실제 사용자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UI를 해석한다.
전망 이론의 세 가지 특성은 UX 설계에 직접 적용된다. 첫째, 준거점 의존성: 사용자의 판단은 절대적 가치가 아닌 기준점과의 비교로 이루어진다. 둘째, 민감도 체감: 동일한 변화라도 기준점에 가까울수록 더 크게 느껴진다. 셋째, 손실 회피: 손실은 동일한 크기의 이익보다 2~2.5배 강하게 느껴진다. 이는 "무료 혜택 제공"보다 "기존 혜택 유지"가 더 강한 동기를 부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휴리스틱과 편향도 UI 설계에 영향을 준다. 가용성 휴리스틱: 쉽게 떠오르는 사례를 더 일반적이라고 판단한다. 대표성 휴리스틱: 대표적 패턴에 맞추어 확률을 판단한다. 앵커링 효과: 처음 제시된 정보에 과도하게 의존한다. 프레이밍 효과: 동일한 정보라도 표현 방식에 따라 다른 결정을 내린다(아시아 질병 문제가 대표 사례). 심리 계정(Mental Accounting): 같은 금액이라도 어떤 범주의 돈으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지출한다.
의사결정의 오류와 외부 관점 — 왜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까
마이클 모부신의 저서 《왜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까》는 사람들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저지르는 실수의 원인과 이를 줄이는 방법을 다룬다. 핵심 개념은 내부 관점(Inside View)과 외부 관점(Outside View)의 구분이다. 내부 관점은 눈앞의 문제에만 집중해 가까이 있는 정보로 판단하는 방식이고, 외부 관점은 유사한 상황들의 통계적 근거, 즉 준거집단을 참고해 판단하는 방식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외부 관점의 유용성을 알면서도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르거나 더 낫다고 여겨 내부 관점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이 경향의 배경에는 세 가지 착각이 있다: 자신이 평균 이상이라고 믿는 우월 착각, 자신의 미래를 남보다 밝게 전망하는 낙관적 착각, 우연한 사건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통제의 착각이다. 이 착각들은 계획의 오류(Planning Fallacy)로 이어져 일이 걸리는 시간과 비용을 체계적으로 과소평가하게 만든다(과제 마감을 50% 확률로 예측한 학생 중 실제로는 13%만 제때 제출했다는 실험이 근거다). 흥미롭게도 사람들은 자신의 계획에는 서투르지만 타인의 계획을 추측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정확하다.
터널 비전(Tunnel Vision)은 기준점 설정과 조정의 휴리스틱, 가용성 휴리스틱(최근 접한 정보에 과도한 비중을 두는 경향), 인지부조화(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해 불편함을 해소하려는 경향), 확증편향(선행 믿음을 확인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심리학자 대니얼 시몬스와 크리스토퍼 샤브리스의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농구공 패스 횟수를 세는 데 집중한 참가자 중 60% 이상이 화면을 가로지르는 고릴라를 인지하지 못함)은 한 가지 과제에 주의를 집중하면 다른 정보를 놓치게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판단은 개인의 성향뿐 아니라 상황의 힘에도 크게 좌우된다. 매장에 프랑스 음악을 틀면 프랑스 와인이 77%, 독일 음악을 틀면 독일 와인이 73% 팔린 실험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아 판단을 내린다. 저자는 터널 비전과 상황 편향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준거집단 설정, 결과 분포 평가, 사전 분석(실패를 미리 가정하고 원인을 추정하는 기법), 의사결정 일기 작성 등을 제안한다. UX 디자이너에게 이 책의 시사점은 두 가지다. 사용자의 의사결정 과정 자체가 이런 비합리성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프로젝트 안에서 수많은 판단을 내려야 하는 디자이너 스스로도 같은 함정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목표 유인 전략: 당근과 채찍
이언 에어즈의 저서 "당근과 채찍"은 개인과 조직을 원하는 목표로 어떻게 유인할지를 행동경제학 관점에서 분석한다. UX 설계에서 사용자 행동을 유도하는 원리로 직접 적용 가능하다.
가치 폄하 효과(Hyperbolic Discounting): 리차드 탈러의 사과 선택 실험에서 보듯, 사람들은 먼 미래 보상에는 합리적으로 행동하지만 당장의 보상이 눈앞에 오면 선호를 역전시킨다. 1년 후 선택에서는 기다렸다가 더 큰 보상을 선호하지만, 오늘의 선택에서는 당장의 작은 보상을 선택한다. UX에서 즉각적 피드백과 단계별 보상이 중요한 이유다.
약속 실천 계약(Commitment Contract): 일반적인 유인(당근)이 미래에 더 나은 선택을 유도하는 반면, 약속 실천 계약은 선택 대안의 범위를 축소해 특정 행동을 강제한다. 너무 나빠서 받아들일 수 없는 채찍을 설정해 다른 선택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앱에서 습관 형성을 위한 스트릭(Streak) 기능이나 목표 미달 시 페널티가 이에 해당한다.
손실 프레임의 강화 효과: 같은 30달러라도 당근보다 채찍이 더 강한 유인 효과를 갖는다. 사람들은 손실을 이익보다 약 2배 강하게 느낀다. 그러나 손실 프레임(채찍)에서는 오히려 위험을 감수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사회적 압력의 활용: 혼자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때 타인을 심사위원으로 세우는 것이 효과적이다. 사람들은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며 비슷한 사람들이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면 더 노력하게 된다. 소셜 기능이 있는 운동·학습 앱이 이 원리를 활용한다.
성공 착각 효과: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의 란 키베츠 실험에서, 이미 2개의 스탬프가 찍힌 12칸 쿠폰을 받은 고객이 10칸 쿠폰 고객보다 20% 빠르게 목표를 달성했다. 이미 시작했다는 착각이 동기를 높인다. UX에서 온보딩 완료율·프로필 진행 표시줄을 처음부터 일부 채워서 보여주는 기법이 이를 응용한 것이다.
핵심 내용
- 행동경제학: 완전 합리성 가정 거부 → 실제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 연구
- 전망 이론: 준거점 의존, 민감도 체감, 손실 회피(손실이 이익보다 2~2.5배 강함)
- 프레이밍 효과: 동일한 선택지도 표현 방식에 따라 다른 결정 유도
- 앵커링: 첫 번째 정보가 이후 판단의 기준점이 됨 → 기본값 설계에 활용 가능
- 가치 폄하 효과: 보상이 가까워질수록 즉각적 소규모 보상을 선호하는 선호 역전
- 약속 실천 계약: 선택지를 제한해 목표 행동을 강제하는 설계 전략
- 성공 착각 효과: 이미 진행 중이라는 인식이 완료 동기를 높임 (스탬프 쿠폰 실험)
- UX 적용: 기본값(Default) 설계, 손실 회피 알림, 준거점 기반 가격 표시, 소셜 압력
- 예측 가능한 비합리성(댄 애리얼리): 비합리적 행동도 체계적 패턴을 따라 예측 가능함
- 공짜의 힘(Zero Price Effect): 가격이 0이 되는 순간 실제 가치와 무관하게 선택이 쏠림
- 사회 규범 vs 시장 규칙: 호의에 금전적 보상을 매기면 관계와 동기가 오히려 훼손됨
- 현상 유지 바이어스(Status Quo Bias): 손실 회피 성향이 만드는 변화 저항 → UI 전면 개편 시 사용자 거부감의 원인
- 옵트인/옵트아웃 기본값 설계(영국 장기기증 사례), StickK·네이버 Start Up 같은 커미트먼트 서비스가 프레이밍·선호 역전의 실전 적용 사례
- 시스템 2 활성화 UX 사례: 팝업 버튼 위치 변경, 모바일 뱅킹 키패드 랜덤 배치, 신용카드 얼리기(물리적 지연)
- 시스템 1 활용 UX 사례: 급커브 도로의 착시 유도 선, 콜레라 지도(Ghost Map)의 직관적 시각화
- 컨텍스트 유무(Context-free vs Context-rich) 효과: 동일 논리 문제도 구체적 맥락이 있으면 정답률 상승
- Think Aloud·카드소팅 등 UX 리서치에서 시스템 2로 유도된 응답·설계가 실제 시스템 1 행동과 괴리되는 문제
관련 개념
- 힉의 법칙 — 선택지 수와 의사결정 시간의 관계
- 사용자 행동 패턴 — 예측 불가한 사용자 행동을 이해하는 리서치 기반 접근
- 포카요케 — 사용자의 인지적 실수를 설계로 방지하는 원칙
- 프로액티브 AI — 사용자 통제감과 선택 설계의 AI 적용
- 넛지와 다크 패턴 — 설득 원칙이 오용될 때 다크 패턴이 되는 경계
- 데이터 기반 UX (DDUX) — 행동경제학 기법을 대규모 A/B 테스트로 검증하는 초개인화 마케팅의 데이터 기반
- UX 디자이너 성장과 리더십 — 치알디니의 설득 6원칙을 UI에 직접 적용하는 것을 중급 디자이너의 조건으로 제시
- 스큐어모피즘 — 시스템 1의 직관적 이해를 돕는 디자인 기법과 플랫 디자인의 대비
선택의 역설과 UX에서의 선택지 설계
선택의 역설(Paradox of Choice)은 Barry Schwartz의 동명 저서(2004)와 쨈 시식 실험(Iyengar, 1990년대)으로 널리 알려진 개념이다. 24종의 시식 코너에서는 더 많은 사람이 모이지만 구매율(3%)이 낮고, 6종에서는 구매율(30%)이 높다는 실험 결과가 "선택지가 많을수록 선택이 어렵다"는 주장의 근거가 됐다.
그러나 이 주장의 역설도 존재한다. Scheibehenne의 후속 실험들에서는 선택지 수가 판매를 방해하는 일관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선택지 수와 선택 확률 사이의 관계는 맥락에 따라 다르며 단순한 법칙으로 규정할 수 없다.
UX 설계에서의 실용적 접근:
- 정보 탐색 단계에서는 선택지가 많을수록 유리 (다양한 옵션 탐색 허용)
- 결정 단계에서는 선택지를 줄이거나 선택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는 것이 중요
- 선택지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도와주는 장치(추천, 판매 직원의 가이드, 더미 상품을 이용한 비교 기준 제시)가 핵심
- 단순 효율 UI가 아닌 만족스러운 경험을 위해서는 오히려 풍부한 옵션 속에서 선택한 만족감을 고려해야 함
행동경제학 주요 개념 — 댄 애리얼리의 '경제 심리학'
댄 애리얼리의 《경제 심리학(The Upside of Irrationality)》은 인간의 비이성적 행동이 갖는 긍정적 측면을 조명한다.
- 높은 인센티브의 함정: 창의적 업무에서 과도한 성과급은 오히려 결과를 저하시킨다. 외부 동기보다 내재 동기가 창의적 성과를 높인다. UX에서도 즉각적 보상(포인트) 외에 장기적 만족감을 고려해야 한다
- 이케아 효과(Endowment Effect): 자신이 직접 조립·설정한 것에 비합리적으로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LinkedIn 프로필 완성 유도처럼 사용자가 UX에 참여해 가치를 느끼게 하되, 귀찮은 설정을 강요하는 것과의 미묘한 균형이 중요
- NIH 신드롬(Not Invented Here): 자신의 아이디어가 아닌 것의 가치를 낮게 보는 경향. 고객 참여 브레인스토밍에서 "해답이 고객으로부터 나왔다"고 느끼게 하면 수용도가 높아진다
- 적응과 보상의 설계: 사람들은 쉽게 적응하므로 큰 보상 하나보다 작은 보상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더 오래 행복감을 유지시킨다
- 인간의 비이성성을 극복 대상이 아닌 설계에 활용할 수 있는 특성으로 이해해야 한다
소셜 프루프와 행동 유발 심리학
소셜 프루프(Social Proof), 즉 사회적 증거는 로버트 시알디니가 《설득의 심리학》에서 제시한 설득의 6대 원칙 중 하나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근거 삼아 자신의 결정을 내리는 심리적 현상이다.
- 사용자 리뷰, 평점, 조회수, 실시간 사용자 수 표시 등이 소셜 프루프를 활용한 UI 패턴
- 관여도가 낮은 사용자는 소셜 프루프 의존도가 높고, 관여도가 높은 사용자는 소셜 프루프를 참고하되 자기 기준으로 최종 결정하는 경향
- 댓글·검색어 순위 조작 등 거짓 소셜 프루프는 신뢰를 손상시키므로 플랫폼의 품질 관리가 필요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 — 6가지 법칙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Influence)》은 UX 디자인이 단순한 사용성 개선을 넘어 사용자의 행동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확장될 때 참고할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사용성 개선이 제품을 사용하는 것 자체를 돕는 수단적 접근이라면, 행동 변화는 사용자와 서비스 제공자 모두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변화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접근이다. 치알디니가 제시하는 설득의 6가지 법칙은 다음과 같다.
1. 상호성의 법칙(Reciprocity) — 먼저 호의를 받으면 갚아야 한다는 심리적 부채감. 낯선 이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을 때 예상 밖의 많은 답장이 돌아온 실험이 대표 사례다. 2. 일관성의 법칙(Consistency) — 작은 약속(청원서 서명)에 동의한 사람은 이후 훨씬 부담스러운 요청(정원에 큰 간판 설치)에도 동의할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 3. 사회적 증거의 법칙(Social Proof) —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판단의 근거로 삼는 경향. 바텐더가 팁 유리병에 미리 지폐를 넣어두는 것이 대표 사례로, 위의 소셜 프루프 UI 패턴과 직접 연결된다. 4. 호감의 법칙(Liking) — 호감 가는 대상의 요청에 더 쉽게 설득된다. 신체적 매력이 높은 피의자의 무죄 선고율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2배 높았던 연구가 예시다. 5. 권위의 법칙(Authority) — 권위를 상징하는 복장·직함을 갖춘 사람의 지시에 순응도가 높아진다. 청원경찰 복장을 한 실험자의 지시에 더 많이 따른 실험이 근거다. 6. 희귀성의 법칙(Scarcity) — 수량이 적을수록, 특히 많던 것이 줄어들수록 더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초콜릿 과자 개수를 달리한 실험이 이를 보여준다.
치알디니는 이 6가지 법칙이 사람들이 의사결정 시 사용하는 '의사결정의 지름길', 즉 휴리스틱(Judgemental Heuristics)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비싼 것 = 품질이 좋은 것"과 같은 고정관념처럼, 사람들은 복잡한 정보를 모두 검토하기보다 몇 가지 조건이 맞으면 자동으로 작동하는 지름길에 의존해 종종 의식하지 못한 채 설득당한다. 이런 지름길을 부당하게 활용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을 치알디니는 '불로소득자'라 칭하며, 책은 각 법칙에 대한 개별적 자기 방어 전략과 함께, 불로소득자들의 부당한 활용에 대해서는 보이콧 등 더 적극적인 반격도 제안한다. 반면 지름길 법칙을 정당하게 활용하는 설득 전문가는 상호 이익이 되는 교환의 동반자로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UX 디자인 관점에서 이 법칙들은 양면성을 갖는다. 비밀번호 주기적 변경 요구나 SNS 프로필 정보의 과도한 입력 유도처럼 사용자를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설계 문제에 6원칙을 적용해 해석하거나 개선안을 도출할 수 있는 한편, 같은 원리가 오용되면 넛지를 넘어선 다크 패턴이 될 위험도 있다. 따라서 UX 디자이너는 자신의 설계가 사용자에게 이로운 '정당한 지름길 활용'인지, 아니면 불로소득자적 오용인지 항상 점검해야 한다.
이 법칙들이 실무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는 2013년 pxd 심리학 산책 독서토론회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됐다. 참가자들은 일관성의 법칙이 무료 게임의 IAP(In-App Purchase)나 프리미엄(Freemium) 비즈니스 모델에서 "일단 시작하면 계속하게 되는" 심리로 작동하며, 사회적 증거의 법칙은 SNS의 "지인이 프로필을 업데이트했다"는 알림이나 링크드인의 능력 인정 기능처럼 상호성의 법칙과 결합해 참여를 유도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반면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두 줄 서기 캠페인처럼 설득 법칙을 적용해도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공적 행동 변화 사례도 논의됐는데, 참가자들은 헌혈·기부 캠페인이 영업 현장만큼 정교하게 설계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당신도 다른 사람의 능력을 인정하라"처럼 자연스러운 사회적 신호가 아니라 사무적으로 느껴지는 보상 설계의 한계를 원인으로 꼽았다. 비밀번호 주기적 변경 요구 UI에서 '안 한다' 대신 '다음에 한다'는 선택지를 준 것은 일관성의 법칙을 이용해 미루기를 유도하려는 시도였지만, 반복 사용되며 설득력이 소진된 사례로 언급됐다. 카네기멜론 대학의 발전기금 모금란이 $50 대신 $52·$104·$208 단위를 제시해 조금씩 더 기부하게 만든 사례나, 코레일 민영화 찬반 설문에서 '민영화'라는 단어를 빼자 찬성 응답이 급증한 사례는 프레이밍이 공적 설득에서도 강력하게 작동함을 보여준다. 참가자들은 설득과 협상의 관계도 논의했는데, 결정권이 자신에게 없다고 말하는 전략이나 두 사람이 서로 다른 태도(우호적/강경한 역)를 취해 유리한 지점을 만드는 전략처럼 설득의 6원칙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별도의 협상 전략들도 존재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행동 변화를 위한 프레임워크들:
- B=mat (BJ Fogg): 행동 = 동기(Motivation) × 능력(Ability) × 자극(Trigger). 동기가 낮아도 능력이 높고 자극이 적절하면 행동 발생 가능
- EAST 프레임워크: 쉽고(Easy), 매력적이고(Attractive), 사회적으로 연결되고(Social), 시의적절해야(Timely) 행동이 발생
- 게이미피케이션: 게임의 재미 요소(규칙, 목표, 보상, 랭킹)를 비게임 맥락에 적용해 반복 행동을 유도
- 루딕 루프(Ludic Loop): 끝없이 갱신되는 목표로 반복적 쾌감에 빠지게 하는 패턴 (팔로워 수, 라이크 등)
변화 행동설계 — 기수와 코끼리 은유
칩 히스·댄 히스의 《스위치(Switch)》는 성공적인 변화에 공통된 패턴이 있다고 주장한다. 핵심 은유는 다음과 같다. 감성적 측면은 코끼리, 이성적 측면은 코끼리에 올라탄 기수이며, 기수가 고삐를 쥐고 있어도 코끼리와 의견이 충돌하면 언제나 코끼리가 이긴다. 기수는 계획과 방향을, 코끼리는 에너지와 추진력을 담당하며, 둘 모두에게 호소해야 변화가 일어난다.
기수에게 방향을 제시하라: 저항처럼 보이는 것은 종종 명확성 부족의 결과다. ① '밝은 점(Bright Spot)' 찾기 — 어려운 환경에서도 성공한 사례를 찾아 모방한다. 베트남 영양실조 문제를 해결한 제리 스터닌의 사례처럼, 내부에서 자생한 해결책이 지속 가능하다. 기수는 문제 쪽으로 분석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으므로, 의식적으로 성공 사례를 찾아야 한다. ② 구체적인 행동 메시지 제시 — 모호성은 기수를 지치게 만들고 코끼리가 익숙한 행로를 고집하게 한다. 가장 익숙한 행로를 벗어나게 하려면 명확한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③ 매력적인 목적지를 그려라 — SMART 목표는 안정된 상태에는 적합하지만, 변화 상황에서는 코끼리에 호소하는 감정적 목적지가 더 효과적이다.
코끼리에게 동기를 부여하라: 게으름처럼 보이는 것은 종종 탈진의 결과다. ① 감정을 찾아라 — 지식과 정보는 기수에게만 말을 거는 것이다. 코끼리는 감정으로 움직인다. 부정적 감정(위기감, 두려움)은 생각을 협소화하지만, 긍정적 감정(흥미, 희망)은 행동 레퍼토리를 확장한다. ② 변화의 규모를 줄여라 — 코끼리는 쉽게 사기가 꺾인다. 높이뛰기 바를 낮춰 가뿐히 넘게 하는 것처럼, 작은 성공이 긍정적 연쇄를 만든다. 투입 노력을 제한하고 달성 가능한 중간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다. ③ 타인의 성장을 도와라 — IDEO의 '프로젝트 분위기 그래프'처럼 U자형 계곡(희망→통찰→자신감)을 거치는 것이 정상이다. 실패를 배우는 과정으로 인식할 때 끝까지 견딜 수 있다.
지도를 구체화하라: 사람의 문제처럼 보이는 것은 종종 상황의 문제다. ① 환경을 설계하라 — 올바른 행동을 수월하게, 그릇된 행동을 어렵게 만들면 사람이 변하지 않아도 행동이 바뀐다. '무소음 조종실' 규칙처럼 방해 요소를 제거하는 환경 설계가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사람 문제가 아닌 상황 문제임을 인식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다.
UX 설계 적용 관점에서, 이 프레임워크는 사용자 행동 변화를 목표로 하는 모든 서비스에 적용 가능하다. 솔루션이 기수(이성)에만 호소하는지, 코끼리(감정)도 고려하는지 검토해야 한다. 또한 문제를 발생시키는 맥락(Context)과 환경이 디자인의 대상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측 가능한 비합리성 — 댄 애리얼리의 '상식 밖의 경제학'
댄 애리얼리(Dan Ariely)의 《상식 밖의 경제학》(원제: Predictably Irrational: The Hidden Forces That Shape Our Decisions)은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이 무작위가 아니라 체계적이고 예측 가능한 패턴을 따른다는 것을 실험으로 보여준다. 원제가 강조하듯 이 책의 핵심은 비합리성 자체가 아니라 그 예측 가능성에 있다 — 뇌가 일관된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동일한 유형의 오류를 반복한다.
책은 13개 장에 걸친 실험 사례로 행동경제학의 주요 개념을 다룬다. 비교(상대성)는 절대적 가치가 아닌 주변 대안과의 비교로 판단이 결정됨을, 공짜의 힘(Zero Price Effect)은 가격이 0이 되는 순간 실제 가치와 무관하게 선택이 압도적으로 쏠린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 규범과 시장 규칙의 구분은 호의를 금전으로 보상하려 하면 오히려 관계와 동기가 훼손된다는 점(변호사에게 무료 자문을 부탁할 때와 정가를 제시할 때 반응이 달라지는 사례)을, 소유 의식은 무언가를 소유하는 순간 그 가치를 과대평가하게 되는 현상(위의 이케아 효과와 연결)을, 고정관념은 사전에 주어진 프레임이 실제 경험과 평가를 바꾸는 현상을 각각 설명한다.
특히 손실 회피(Loss Aversion)를 "얻을 것보다 잃어버릴 것에 더 집착하는 습성"으로, 플라시보 효과를 가격과 인지된 효능이 함께 움직이는 현상(50센트 아스피린이 1페니 아스피린보다 효과가 크다고 느끼는 사례)으로 설명하며, 이 지점에서 애리얼리는 UX/서비스 디자이너가 마주하는 윤리적 딜레마를 제기한다 — 사람들의 비합리적 인식(가격이 비쌀수록 효과가 크다고 느끼는 것)을 그대로 방관해 비용 부담을 늘릴 것인가, 아니면 저렴한 대안을 강요해 심리적 효능감을 낮출 것인가. 애리얼리가 제안하는 절충안은 사람들에게 스스로 원하는 순서로 행동할 기회를 주는 것으로, 명령이나 강제보다는 부드럽게 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설계를 지지한다.
이 책은 "다른 심리학 책이 디자인의 간접적 바탕을 제공한다면, 행동경제학은 직접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위에서 다룬 손실 회피·앵커링·프레이밍 같은 개념들을 사례 중심으로 재확인시켜주는 입문서로 소개됐다.
서비스 디자인 사례집으로 읽는 '상식 밖의 경제학'
이재용은 같은 책 댄 애리얼리의 《상식 밖의 경제학》을 위 절과는 다른 각도에서 다시 정리했다. 이론적 개념 요약이 아니라, 13개 장 각각에 등장하는 실험과 일화를 의료, 잡지·관광·컨텐츠, 인사·데이트, 식음료, 공공재, 온라인쇼핑, 자원봉사, 탁아소, 금융, 자동차, 청소년, 스마트카, 신용카드, 가구, 광고, 디지털방송, 공공, 항공 등 산업/서비스 도메인별로 태그를 붙여 재배열한 것이다. 이는 책 한 권을 이론서가 아니라 서비스 디자인 사례집으로 취급하려는 시도로, "그 어떤 서비스 디자인 사례집보다 탄탄한 심리학·행동경제학적 근거를 갖췄다"는 평가가 그 배경이다.
이 재배열을 통해 위 절에서 다루지 않은 사례들도 함께 드러난다. 의료 분야에서는 전신화상 환자의 붕대를 빨리 뜯을지 천천히 뜯을지의 딜레마(환자의 고통과 간호사의 부담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문제), 의사의 정성이 그 자체로 치료 효과를 만드는 플라시보 효과, 신용카드가 소비를 늘리는 반면 이를 억제하도록 설계된 카드 상품 사례가 소개된다. 사회 규범과 시장 규칙의 경계는 위에서 다룬 변호사 무료 자문 사례 외에도 이스라엘 탁아소가 지각한 부모에게 벌금을 매기자 오히려 지각이 늘어난 사례로 보강되며, 자원봉사 역시 무료 봉사보다 저가 유료 봉사에서 참여도가 낮아지는 역설을 보여준다. 무형의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부정행위도 별도로 조명되는데, 스카이프·페이팔 계정 해킹이나 항공사 마일리지·카드사 연체 이자에 대한 도덕적 불감증은 사람들이 실물 화폐를 훔치는 것보다 무형 자산을 부정 이용하는 데 죄책감을 덜 느낀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된다.
이처럼 동일한 책을 이론 중심(위 절, 심리학 산책 독서토론회 기반)과 산업별 사례 카탈로그(이 절) 두 가지 방식으로 각각 정리해 둔 것은, 서비스 디자이너가 프로젝트 도메인에 맞는 행동경제학 사례를 빠르게 찾아 참고할 수 있는 실무 자료로서의 가치를 더한다.
합리성 논쟁 — 댄 애리얼리 vs 팀 하포드
인간은 합리적인가 비합리적인가? 역자 김주환이 《드라이브》 후기에서 소개한 댄 애리얼리와 팀 하포드의 논쟁을 계기로, 이재용은 애리얼리의 《상식 밖의 경제학》·《경제 심리학(경제심리학)》과 하포드의 《경제학 콘서트 2(The Logic of Life)》·《어댑트(Adapt)》 네 권을 나란히 놓고 두 사람의 입장 차이를 정리했다. 애리얼리는 "인간은 대부분의 경우 비이성적이다(Mostly Irrational)"라는 입장에서, 인간의 판단에는 비이성적인 부분이 많지만 그 비이성성 역시 많은 경우 예측 가능한 패턴을 따른다고 주장한다(위 "예측 가능한 비합리성" 절 참고). 반대로 하포드는 "인간은 대부분의 경우 이성적이다(Mostly Rational)"라는 입장에서, 안전한 섹스를 위한 선택, 게임에서의 선택, 결혼과 데이트, 연봉과 성과 보상, 거주지와 인종 차별, 도시와 정치 등 무작위로 벌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인간 행동이 실은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합리적으로 선택한 결과라는 논리를 편다. 하포드가 정의하는 합리성은 단순히 눈앞의 비용과 혜택뿐 아니라 전체 예산과 미래의 결과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두 사람은 이후 동영상을 통해 직접 논쟁을 벌이기도 했는데 쟁점은 행동경제학 실험이 현실을 얼마나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가였다.
두 사람의 입장은 완전히 대립하기보다는 관점의 차이에 가깝다. 애리얼리는 후속작 《경제 심리학》에서 비합리성의 부정적 측면에 치우쳤던 전작의 균형을 맞추듯, 직장에서 인센티브가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나 연애·외모의 상관관계 같은 가정에서의 비합리성이 갖는 긍정적 측면을 조명한다. 하포드 역시 후속작 《어댑트》에서는 전문가의 예측이 대체로 틀리기 쉬우며 세상은 인간이 파악하기에 너무 복잡하고 불확실하다고 인정하는데, 이는 "성공은 진화적 적응—즉 합리적 선택—의 산물"이라는 그의 기존 관점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다. 흥미롭게도 애리얼리는 자신과 반대 입장에 선 하포드의 이 책을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사람들의 선택은 비일관적이고 비합리적이며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그 상당수에는 이유가 있다. 금전적인 것, 부분적인 것, 일회적인 것만 놓고 보면 비이성적으로 느껴지는 선택도, 비금전적인 것, 전체적인 것, 긴 시간에 걸친 것을 함께 고려하면 합리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통제된 실험에서 드러나는 비합리성과 실제 인생에서 벌어지는 선택은 다를 수 있으며, 실험이 삶의 진실을 보여주는 유효한 방법이라 해도 모든 정보를 알려준 뒤에도 여전히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부분은 남는다. UX 리서치 관점에서 이 논쟁은, 사용자 행동을 "비합리적"이라고 단정하기 전에 그 선택이 놓인 전체 맥락과 시간 범위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시사점을 준다.
카너먼의 시스템 1·2와 UX 설계 함의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은 행동경제학의 심리적 원리를 가장 체계적으로 정리한 저작이다. 카너먼은 아모스 트버스키와의 공동 연구로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을 정립했으며, 이 업적으로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두 가지 사고 시스템: 시스템 1(빠른 사고)은 자동적·직관적이며 노력이 거의 필요 없다. 일상의 패턴 인식, 감정적 반응, 습관적 행동이 여기에 해당한다. 시스템 2(느린 사고)는 의식적·분석적이며 의도적인 집중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휴리스틱과 편향은 시스템 1이 상황에 따라 빠른 판단을 내릴 때 발생하는 체계적 오류다.
전망 이론의 배경: 같은 재화라도 살 때와 팔 때 가격 인식이 달라지는 소유 효과(Endowment Effect)처럼, 기존 경제학의 '합리적 인간' 가정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을 심리학적 준거점 개념으로 풀어냈다. 기준점에 따라 동일한 결과가 이득이 되기도, 손실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UX 설계 함의: 시스템 1의 편향은 의지만으로 극복하기 어렵다. 그러나 인지적 긴장감(작은 글씨, 낯선 포맷 등)을 유발해 시스템 2를 활성화하거나, 표준화된 구조화 인터뷰처럼 후광 효과를 최소화하는 절차적 설계를 통해 보완할 수 있다. UX 디자이너는 시스템 1이 효과적인 상황(익숙한 패턴 인식)과 오류를 일으키는 상황을 구분하고, 각각에 맞는 인터페이스를 설계해야 한다.
독서 토론회 사례 — 시스템 1/2를 활용한 UX 디자인 실례: 2013년 pxd 심리학 산책 네 번째 독서 토론회는 《생각에 관한 생각》의 시스템 1/2 개념을 구체적인 UX 사례로 확장해 논의했다. 시스템 2를 의도적으로 활성화하는 설계로는 모바일 삭제 확인 팝업에서 확인 버튼 위치를 계속 바꾸는 방식, 모바일 뱅킹 앱이 비밀번호 입력 키패드 배치를 매번 바꾸는 방식, 신용카드를 얼음 속에 얼려 즉각적인 사용을 물리적으로 지연시키는 사례(《상식 밖의 경제학》)가 논의됐다. 반대로 약관 동의 UI나 홈쇼핑의 "몇 분 남았습니다" 같은 문구는 시스템 2의 개입을 의도적으로 차단해 즉흥적 동의·구매를 유도하는 반대 사례로 지적됐다. 음식의 칼로리 정보만 제공했을 때는 오히려 나쁜 선택이 늘었지만, 소모에 필요한 운동 시간으로 환산해 보여주자 선택이 개선됐다는 실험도 정보 형태가 시스템 1/2 중 무엇을 자극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짐을 보여주는 사례로 논의됐다.
시스템 1을 활용한 설계 사례로는 급커브 도로에 좁은 간격의 선을 그려 실제보다 속도가 빠르게 느껴지도록 착시를 유도해 감속을 이끄는 도로 디자인, 콜레라 발병 지역을 지도 위에 시각화해 수인성 전염이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설득한 존 스노우의 Ghost Map, 추상적인 조건부 확률 문제보다 구체적 맥락이 있는 사례(카드 뒤집기 논리 문제의 맥락 있는 버전 vs 없는 버전)로 제시했을 때 정답률이 높아지는 컨텍스트 유무(Context-free vs Context-rich) 효과가 논의됐다. 스큐어모피즘(Skeuomorphism)과 플랫 디자인(Flat design)의 비교도 시스템 1/2 관점에서 재해석됐다 — 스큐어모피즘은 현실 사물과의 시각적 유사성으로 시스템 1의 직관적 이해를 돕지만 지나치면 실제 작동 여부를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고, 플랫 디자인은 시스템 1적 단서가 부족해 학습이 더 필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스큐어모피즘 참고).
참가자들은 UX 리서치 방법론에도 시스템 1/2 구분을 적용했다. Think Aloud 프로토콜이나 사용성 평가 후 인터뷰에서 사용자가 원래는 시스템 1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했던 행동을, 왜 그렇게 했는지 설명을 요구받으면 시스템 2적으로 논리를 재구성해 답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 카드소팅으로 IA를 설계할 때 시스템 2로 분류한 메뉴 구조를 실제 사용(시스템 1)에서는 오히려 불편하게 느끼는 괴리가 발생한다는 점이 지적됐다. 고령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TV 메뉴 사용성 평가 사례에서는, 메뉴 구조 자체보다 커서라는 중간 매개체—젊은 사용자에게는 시스템 1적으로 자연스럽지만 고령 사용자에게는 시스템 2적 학습이 필요한 요소—가 더 큰 장벽이었다는 관찰도 공유됐다. 참가자들은 "디자이너는 시스템 2로 고민해서 만들고 사용자는 시스템 1로 사용한다"는 구조적 차이가 여러 UX 문제의 근본 원인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HCI Korea 2013 우수연사상 튜토리얼 — 사용자 행동변화를 가로막는 세 장벽
2013년 HCI Korea 학술대회에서 pxd 박기혁 선임이 발표한 튜토리얼 "행동경제학과 UX: 사용자의 행동변화 유인하기"는 해당 대회의 우수 연사상(The Best Speaker Award)을 수상했다. 이 발표는 행동경제학의 전제인 제한된 합리성을 바탕으로, 사용자가 기존 행동을 좀처럼 바꾸지 않는 이유를 세 가지 이론과 실제 사례로 정리한다.
① 변화에 대한 가치평가가 달라진다 — 전망 이론과 현상 유지 편향: 위에서 다룬 전망 이론의 손실 회피 성향은 사용자가 익숙한 상태를 벗어나길 꺼리는 현상 유지 바이어스(Status Quo Bias)로 이어진다. 모바일 앱의 UI/GUI를 전면 개편했을 때, 설계자 입장에서는 경험이 개선되었다고 판단해도 기존 사용에 익숙한 사용자는 변화 자체에 거부감을 느껴 불만을 제기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새로운 UI가 아무리 우수해도 학습 비용을 사용자에게 얼마나 감수하게 할지, 혹은 거부감 없는 전환 경로를 설계할지가 관건이다.
② 판단이나 선택이 일관되지 않는다 — 프레이밍 효과와 초기값: 위에서 다룬 프레이밍 효과는 어떤 기준(프레임)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동일한 선택지에 대한 판단이 달라지는 현상이다. 영국의 장기기증 의사 표시 제도가 대표 사례로 인용되는데, 신청서의 초기값을 '기증 안 함(옵트인)'으로 두느냐 '기증함(옵트아웃)'으로 두느냐에 따라 실제 기증 등록률이 크게 달라진다. 즉 UX에서 기본값(default) 설계 하나가 프레이밍 효과를 통해 사용자의 최종 선택을 좌우할 수 있다.
③ 선호가 시간에 따라 일정하지 않다 — 선호 역전과 커미트먼트 서비스: 위에서 다룬 선호 역전 현상은 다이어트를 결심해 놓고도 눈앞의 초콜릿을 선택하는 것처럼, 과거·현재·미래 시점에 따라 선호가 뒤바뀌는 현상이다. 이를 억제하기 위한 실제 서비스 사례로 StickK(목표 미달성 시 금전적 페널티를 부과하는 커미트먼트 서비스)와 네이버의 Start Up(목표 관리 서비스)이 소개되었으며, 이는 위 "당근과 채찍" 절에서 다룬 약속 실천 계약(Commitment Contract)을 실제 서비스로 구현한 사례에 해당한다.
pxd talks 90 — TRIZ식 행동경제학 기법과 초개인화 마케팅
2019년 pxd talk에서 디자인 씽킹·신제품 개발·행동경제학을 연구하는 주재우 교수는, 엔지니어들이 발명 문제 해결에 사용하는 TRIZ(Theory of Inventive Problem Solving)(TRIZ와 발명적 문제해결 참고)처럼 행동경제학도 실무에 곧바로 적용 가능한 기법 목록으로 정리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주재우 교수가 소개한 행동경제학 실무 기법 10가지는 짧은 심리 원리와 사례로 구성된다: 구매 가속화(Purchase Acceleration)(비어 있는 쿠폰보다 일부가 채워진 쿠폰이 재구매율을 높임), 의사결정 피로(Decision Fatigue)(입력란이 모두 비어 있으면 피로를 느끼므로 일부를 기본값으로 채우는 것이 유리함), 공감 격차(Empathy Gap)(운동 직후처럼 감정이 고조된 상태에서는 이성적일 때와 다른 소비 결정을 내림), 소유 효과(Endowment Effect)(가전제품 렌탈처럼 일정 기간 소유하게 하면 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짐), FOMO(Fear of Missing Out)(기회를 놓칠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SNS 이용도가 높을수록 크게 작용), 심리적 회계(Mental Accounting)(현금 분실보다 티켓 분실 시 재구매율이 크게 떨어지는 것처럼 돈의 용도별 인식이 다름), 사전 공약(Precommitment)(호텔 수건 재사용에 미리 응답한 투숙객의 실제 재사용률이 높아짐), 디코이 효과(Decoy Effect)(버튼 문구를 'Yes/No'로 바꾸면 'Click here'보다 클릭률이 상승), 피크엔드 법칙(Peak-End Rule)(발레파킹처럼 경험의 마지막 순간이 전체 만족도를 좌우), 옵트인/옵트아웃(Opt-in/Opt-out)(빈 체크박스는 선택 자체를 회피하게 만듦). 이 목록은 위에서 다룬 손실 회피·프레이밍·앵커링 같은 이론적 편향을, 바로 적용 가능한 '기법 카탈로그' 형태로 재구성한 것이다.
강연은 이 기법들을 실제 프로젝트에 적용한 사례로 초개인화(Hyper-personalization) 마케팅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2만 5,000개의 소비 패턴을 분석해 고객이 원하는 혜택을 원하는 타이밍에 자동으로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모델을 개발하면서, 노력(Effort)·심리적 회계·공감 격차·소유 효과·사회적 규범(Social Norm) 5가지 기법을 반영한 메시지 문구를 설계했다(예: "당신을 위해 지난해부터 준비했어요", "2천 원이 갑자기 생긴 셈이네요"). 59만 2,589명의 가입자를 6가지 메시지 × 3가지 발송 타이밍, 총 18가지 조건으로 무작위 배정해 A/B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행동경제학 기법을 적용한 메시지가 통제군 대비 유의미한 개선 효과를 보였으며, 요일·날씨 등 맥락 변수에 따라 반응 정도가 달라졌다(예: 소비 수요가 있는 주말이나 미세먼지가 심한 날 효과가 커짐). 이론 중심의 위 소개들과 달리, 대규모 정량 A/B 테스트로 행동경제학 원리를 실무에서 직접 검증한 사례라는 점에서 상호보완적이다.
행동경제학의 기원 — 역설과 기대 효용 가설
행동경제학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이전, 전통 경제학은 인간을 한정된 자원으로 욕망을 최대한 충족시키려는 합리적 존재,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로 가정해 왔다. 그러나 이 가정을 흔드는 역설들이 이미 경제학 내부에서 보고되고 있었다.
알레의 역설(Allais Paradox)은 두 개의 겜블을 순차적으로 제시했을 때 사람들의 선택이 논리적으로 일관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확실한 이익 앞에서는 손실 가능성을 극도로 회피하다가도, 확률 차이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는 더 큰 금액에 이끌려 선택을 뒤집는다. 엘스버그의 역설(Ellsberg Paradox)은 확률이 명확한 대안과 불명확한 대안을 비교했을 때 수학적으로 모순되는 선택을 하는 현상으로, 확률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더라도 사람들이 이를 객관적으로 인지하지는 못한다는 불확실성에 대한 편향을 드러낸다.
다니엘 베르누이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설(St. Petersburg Paradox)은 기대값이 무한대인 도박에도 사람들이 아주 낮은 값만 지불하려 한다는 사실을 통해, 인간은 값(value) 자체가 아니라 값에 따른 효용(Utility)을 추구한다는 점을 최초로 규명했다. 이 통찰은 이후 폰 노이만과 모르겐슈테른에 의해 기대 효용 가설(Expected Utility Hypothesis)로 일반화되어 불확실성 하 선택을 설명하는 경제학의 표준 이론이 되었다. 경제학적 분석은 근본적으로 "As if(만약 그렇다면)"라는 전제 위에 서 있다. 현실의 선택이 아무리 복잡해도 사람들이 '일관성'을 지닌다면 수학적 분석과 실제 선택 결과가 일치할 것이라는 가정이다. 이 틀에서 위험 기피·위험 중립·위험 감수라는 세 가지 리스크 태도가 정식화되었지만, 크기의 차이를 따지는 cardinality보다 순서만 비교하는 ordinality에 치우쳐 정밀한 선택 예측에는 한계를 남겼다.
이 한계를 정면으로 파고든 것이 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다. 동일한 200만원이라도 "100만원을 확실히 받는다"는 이득 프레임과 "200만원을 받은 뒤 100만원을 다시 뺏길 수도 있다"는 손실 프레임 중 어느 쪽으로 제시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위험 선호는 정반대로 뒤집힌다. 두 사람은 이를 준거점(Reference Point) 개념으로 설명했다: 이득 쪽을 바라볼 때는 위험 회피를, 손실 쪽을 바라볼 때는 위험 감수(손실 회피의 이면)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함께 정리된 개념들도 이후 UX 논의에서 반복적으로 인용된다. 앵커링(Anchoring)은 전혀 무관한 정보(임의로 뽑은 숫자)조차 준거점으로 작동해 판단을 왜곡시키는 "새끼 거위의 법칙(각인 효과)"이며, 선호 역전(Preference Reversal)은 동일한 결과라도 프레임(예: "빼앗는다" vs "부지런히 일해서 얻었다")에 따라 공정성 판단이 달라지는 현상이다.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 실험에서 실제 사람들이 순수한 이익 극대화 대신 5:5 또는 6:4에 가까운 분배를 선택한다는 결과는, 인간이 불평등 회피(Inequality Aversion) 성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행동경제학을 대하는 태도에도 유의할 점이 있다. 경제적 행위는 언제나 맥락(Context)에 의존하므로 실험 결과를 절대적 결론으로 오인하는 확증 편향을 경계해야 하며, 행동경제학이 발견한 비일관성이 교정해야 할 결함인지 오랜 진화가 남긴 특성인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무엇보다 행동경제학은 증세·감세 같은 기존 경제 정책을 대체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보완재로 이해해야 한다는 지적(조지 로웬스타인)이 있다.
출처
- [행동경제학과 UX] 1.행동경제학_경제를 움직이는 인간 심리의 모든 것 — 2011-08-26, 알 수 없는 사용자
- [행동경제학과 UX] 2. 왜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까? — 2011-08-26, 알 수 없는 사용자
- [행동경제학과 UX] 3. 당근과 채찍_목표로 유인하는 강력한 행동전략 — 2012-01-12, 알 수 없는 사용자
- [행동경제학과 UX] 4. 스위치_손쉽게 극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행동설계의 힘 — 2012-02-22, 알 수 없는 사용자
- 선택의 역설 - 쨈 얘기는 이제 그만 — 이 재용
- [독후감] 경제 심리학 - 댄 애리얼리 — 이 재용
- UX에서 소셜 프루프와 사회적 동기 — 박재현 (Jaehyun Park)
- 디자이너가 알면 좋을 심리학, 행동 경제학 — 김민우 (Minwoo Kim)
- [심리학 산책 3] 상식 밖의 경제학 — 2013-04-08, 알 수 없는 사용자
- [심리학 산책 4] 생각에 관한 생각 — 2013-05-15, 알 수 없는 사용자
- [심리학 산책 5] 설득의 심리학 — 2013-06-11, 알 수 없는 사용자
- [pxd talks 90] 초개인화 마케팅 프로젝트 — 2019-07-19, 알 수 없는 사용자
- [pxd talks 27] 행동경제학의 기원 그리고(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이 하고픈) 몇 가지 — 2013-05-08, 알 수 없는 사용자
- [HCI Korea 2013] 행동경제학과 UX : 사용자 행동변화 유인하기 — 2013-04-17, 알 수 없는 사용자
- [심리학 산책 5] 설득의 심리학 : 독서 토론회 스케치 — 2013-07-02, 알 수 없는 사용자
- 서비스 디자인 사례집 - 상식 밖의 경제학 — 2013-04-15, 이 재용
- [심리학 산책 4] 생각에 관한 생각 : 독서 토론회 스케치 — 2013-06-07, 알 수 없는 사용자
- 인간은 합리적인가? 비합리적인가? — 2013-06-19, 이 재용